속터지는 독일 (3)
공보험이라는 이름의 반쪽짜리
독일에서 다른 지역으로 장거리 이사를 하게 되면, 물론 모든 것이 스트레스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짜증나고 힘든 건 두 가지다. 첫째는 모든 분야의 의사를 처음부터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 둘째는 멀쩡한 카센터(KFZ Werkstatt) 하나 찾는 일이다. 오늘은 이 중 첫 번째를 좀 건드려볼까 한다.
이사를 하고 나면, 주치의부터 안과, 피부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까지 진료받을 병원을 과별로 하나하나 새로 찾아야 한다. 그냥 검색해서 가까운 곳을 고르면 되는 게 아니다. 전화를 돌려 신규 환자를 받는 곳을 수소문하고, 받아주는 병원을 겨우 찾아 환자로 등록되기까지가 매번 한바탕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독일 공보험(GKV)이라는 제도의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매달 월급에서 적지 않은 돈을 꼬박꼬박 떼어가는 이 "공적 보험"이, 정작 아플 때 찾아가는 병원 앞에서는 얼마나 공적이지 않은지를.
먼저 이 보험이 얼마나 떼가는지부터 보자. 2026년 기준 건강보험료는 일반 요율 14.6%에 평균 추가부담금 2.9%를 더해 약 17.5%다. 여기에 요양보험료 3.6%(자녀 없으면 4.2%)가 또 붙는다. 명목상 회사와 절반씩 나눠 낸다지만, 그 회사 몫도 결국 내 인건비에서 나가는 돈이라고 보면 된다. 평범한 평균 소득자 — 연 4만5천 유로, 월 3,750유로쯤 버는 사람 — 를 예로 들어보자. 이 사람의 건강·요양보험료는 매달 대략 750유로가 넘는데, 회사가 절반을 대주니 본인 월급에서 직접 빠져나가는 몫은 400유로 안팎이다. 하지만 회사가 대주는 그 절반도 따지고 보면 원래 내 몫으로 잡혔어야 할 인건비다. 결국 매달 750유로가 넘는 돈이, 평생, 내 노동의 대가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셈이다.
게다가 기본 요율(14.6%) 위에 추가부담금(Zusatzbeitrag)이라는 게 따로 붙어서, 전체 요율은 17.5%까지 올랐다. 이 추가분은 2015년 이후로 세 배 넘게 뛰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받는 의료 서비스가 그만큼 좋아졌는가? 전혀 아니다. 예약은 더 밀리고, 자비 항목은 더 늘었다.
공보험은 직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의무 가입 대상이고, 보험료는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공보험 시스템이 별로이니 나는 다른 유형의 보험에 가입하겠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불공평이 있다. 이 강제에서 빠져나갈 자유가 특정 부류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연소득 약 7만7천 유로(월 6,450유로)를 넘는 고소득 직장인은 공보험을 벗어나 사보험(PKV)으로 갈아탈 수 있다. 자영업자와 프리랜서는 소득과 상관없이 언제든 사보험을 택할 수 있고, 공무원은 아예 국가가 의료비의 절반 이상을 보조금으로 대주면서 사보험을 쓰게 한다. 즉 돈을 아주 많이 벌거나, 자기 사업을 하거나, 공무원이면 이 강제에서 빠져나갈 길이 있다.
정작 갇히는 건 그 사이에 낀 평범한 봉급쟁이다. 소득이 문턱을 넘지도 않고, 자영업자도 공무원도 아닌 보통 직장인은 선택의 여지 없이 공보험에 묶인다.
더 기막힌 건, 정부가 이 탈출구마저 일부러 좁히고 있다는 것이다. 2027년부터는 사보험으로 갈아탈 수 있는 소득 기준을 8만4천 유로 수준까지 확 끌어올리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사보험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약 10만 명이, 이 조치로 공보험에 그대로 묶이게 된다. 이유는 뻔하다.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공보험 곳간이 더 빈다. 그러니 떠날 수 있던 사람들까지 붙잡아두는 것이다. 부실한 시스템을 떠받치기 위해, 못 나가게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이게 지금 독일 공보험이 돌아가는 방식이다.
의사는 많은데, 정작 갈 데가 없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독일에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역대 최다다. 공보험 측 연합회조차 "의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인기 있는 도시 지역과 전문과에 과잉 편중돼 있는 게 문제"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왜 나는 이사한 동네에서 의사 잡기가 이렇게 힘든가. 여기에 독일 특유의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있다.
독일은 "수요 계획(Bedarfsplanung)"이라는 걸 한다. 지역별, 전문과별로 "인구 몇 명당 의사 몇 명"이라는 비율을 정해놓고, 그 비율을 넘으면 그 지역을 "과잉 공급"으로 판정해 신규 개원을 아예 막아버리는 제도다. 공급률이 110%를 넘으면 그 지역은 잠긴다(gesperrt). 새 의사는 그 도시에서 공보험 진료로 개원할 수 없고, 은퇴하는 기존 의사의 자리를 물려받는 수밖에 없다.
취지는 이해가 간다. 의사가 돈 되는 대도시로만 몰리지 않게, 골고루 분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가. 도시는 이미 "꽉 찼다"고 잠겨 있으니 새 의사가 못 들어오고, 그 바람에 기존 의사들에게 환자가 미어터지게 몰린다. 반대로 시골은 개원을 자유롭게 열어주고 특혜까지 얹어줘도, 아무도 안 간다. 의사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사람이다. 생활 인프라도, 아이 키울 기반 시설도 거의 없는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도시는 도시대로 미어터지고, 시골은 시골대로 텅 빈다. 균등하게 나누겠다는 제도가, 양쪽 다 실패한 것이다. 오죽하면 의사 단체조차 "이 수요 계획이라는 건 아예 폐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교묘한 함정이 있다. "꽉 찼다"고 잠긴 그 자리들이, 실제로는 꽉 차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먼저 이 "자리"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독일 개원의는 자기가 얼마나 일할지를 정해서 등록하는데, 풀타임으로 일하는 완전 개원은 한 자리를 통째로 차지하는 "1.0", 절반만 일하는 반쪽 개원은 "0.5"로 계산된다. 1.0이면 주 25시간을 진료해야 하고 진료비 정산 한도도 그만큼 크며, 0.5면 그 절반인 주 12시간 30분만 열면 되고 한도도 절반이다. 쿼터는 이 크기를 모두 더해 매긴다. 예컨대 어떤 지역의 안과 정원이 열 자리인데 1.0짜리 의사가 열 명 있으면, 그 지역은 꽉 찬 것으로 잡혀 신규 개원이 막힌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편하게 일하고 싶은 의사라면 자리를 0.5로 줄이면 된다. 통계에도 0.5로만 잡히고, 남는 절반은 새 의사가 들어올 자리로 나올 수 있다. 서류와 현실이 일치하는 정직한 방식이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다. 독일 의사는 정년이 없어 원하는 만큼 오래 일할 수 있는데, 자리는 1.0으로 붙든 채 진료만 법정 최소로 줄이는 경우가 있다. 규정상 1.0은 주 25시간만 열면 되니, 딱 그만큼만 채우고 오전 위주로 며칠 문 여는 식이다. 통계에는 "한 자리가 꽉 찬" 것으로 잡히지만, 실제로 돌아가는 건 그 최소한뿐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핵심이다. 이렇게 자리를 1.0으로 유지하는 의사에게, 공보험 진료를 최소한만 열고 남는 시간은 사보험 환자와 개인 부담 진료에 쏟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기서 의사를 탓할 생각은 없다. 의사라고 자선으로 병원을 돌리는 게 아니다. 공보험 진료는 정산 한도에 묶여 아무리 봐도 버는 데 한계가 있고, 사보험 환자나 환자가 직접 돈을 내는 개인 부담 진료는 그 제한이 없다면, 당연히 후자로 힘이 쏠린다. 누구라도 그렇게 한다.
문제는 이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결과다. 공보험 창구는 형식적으로만 열려 있고 진짜 영업은 프리밧으로 돌아가는데, 그 자리는 서류상 여전히 "공보험 의사 한 명이 꽉 채우고 있는" 자리로 잡힌다. 여기서 정산 구조를 알아야 한다. 의사에게는 분기마다 "이만큼까지는 정상 단가로 쳐주겠다"는 진료량 한도가 정해져 있고, 그 한도를 넘어서면 초과분은 정상 단가가 아니라 대폭 깎인 값으로만 정산된다. 많이 볼수록 한 건당 받는 돈이 쪼그라드는 것이다. 그러니 한도를 채운 의사가 공보험 환자를 더 받는 건, 손해를 감수하고 헐값에 일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반면 정산 한도의 제약이 없는 사보험·자비 진료는 이런 삭감이 없다. 그렇게 공보험 쪽 문이 사실상 닫히고 나면, 그 의사가 부담 없이 더 받을 수 있는 건 사보험 환자뿐이다. 사보험 환자를 우선해서가 아니라, 공보험 환자를 늘려 받을 유인이 제도적으로 사라져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자리는 새 의사의 진입도 막고, 정작 공보험 환자가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진료는 최소한으로 쪼그라든다. 열심히 공보험 환자를 많이 보면 손해에 가깝고, 최소한만 열면서 프리밧으로 돌리면 이득이 되도록 — 그리고 그렇게 반쯤 비어버린 자리가 통계 장부 위에서는 "가득 찬 자리"로 둔갑해 다른 의사가 들어올 문까지 걸어 잠그도록 — 제도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그 결과, 모두의 돈으로 굴러가는 공공의 의료가 정작 공적으로는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예약 전화가 곧 첫 번째 관문

그 결과는 환자 앞에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이번 분기는 다 찼으니 다음 분기에 오세요"라는 말이다. 아파서 갔는데 달력을 넘기라는 소리다. 다른 하나는 아예 문턱을 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미 진료량 한도에 다다른 의사에게 새 환자란 제값도 못 받으며 봐야 하는 부담이니, 이사 온 사람은 "죄송하지만 신규 환자는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전박대를 몇 번이고 당한다. 병원이 없어서도, 의사가 매정해서도 아니다. 제도가 "여기서부터는 제값을 쳐주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놓아, 그만 받는 게 합리적이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모든 게 겹쳐서 나타나는 게 예약 대기다. 공보험 환자의 전문의 예약 대기는 2024년 평균 42일이었다. 2019년보다 오히려 열흘이 늘었다. 정형외과 같은 곳은 몇 달을 기다리는 게 예사다. 무릎이 아파서 예약을 잡았는데 세 달 뒤라면, 솔직히 그 시간이면 웬만한 건 자연치유되고도 남는다. 치료가 필요 없어질 때쯤 진료 순번이 돌아오는 것이다.
더 기막힌 건, 정부도 이 문제를 안다는 것이다. 2019년에 예약 대기를 줄이겠다며 "예약 서비스법(TSVG)"이라는 걸 만들고 29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2026년 초, 연방회계감사원은 이 법이 "완전히 헛돈이었고, 대기 시간 단축 효과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늘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세금 29억 유로를 태우고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난 편들에서 본 그 익숙한 패턴이다. 돈은 쓰는데, 문제는 그대로다.
응급이라는 뒷문, 그러나 모두에게 열리진 않는다

이쯤 되면 독일 환자들 사이에 도는 우회로가 하나 있다. 꼼수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지만, 어쨌든 방법은 방법이다. 바로 "응급"으로 가는 것이다.
독일 법에서 응급 상황이거나 급성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의사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다. 보험 종류가 뭐든, 예약이 찼든, 진료량 상한에 걸렸든 상관없다. 거부하면 형법상 "부작위에 의한 구조 불이행"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건, "우리는 진료량이 꽉 차서 신규 환자를 안 받는다"는 그 논리가 응급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산이나 환자 수 상한은 거부의 법적 근거가 못 된다. 그리고 한 번 진료실에 들어가 진료를 받으면, 그 순간 그 병원의 환자로 등록이 된다. 즉 급성 증상으로 문을 밀고 들어가 신규 환자로 자리를 트는 것이다.
문제는 이 뒷문이 모든 과에 열려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팔이 부러지고, 급성 중이염이 오고, 기침이 멈추지 않는 경우라면 —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는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다. 이런 과의 동네 의원은 급성 환자를 받는 게 원래 정상 업무 범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과와 피부과는 사정이 다르다. 이 두 과의 진짜 응급 — 예컨대 급성 녹내장 발작이나 망막 박리, 심한 화상이나 중증 알레르기 반응 — 은 동네 의원(Praxis)에서 다루는 게 아니라 대학병원 응급실로 직행해야 하는 사안이다. 프락시스에는 그럴 장비도, 당직 체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응급이면 애초에 동네 안과·피부과를 거치지 않고 병원으로 가버린다. 결과적으로 그 동네 프락시스의 신규 환자로 등록될 일이 없다. 하필이면 신규 환자 잡기가 가장 어려운 이 두 과에서, 응급이라는 뒷문마저 막혀 있는 것이다.
진료실에 들어가도 "그건 공보험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고생을 다 뚫고 겨우 의사 앞에 앉는다고 끝이 아니다. 마지막 관문이 하나 더 남아 있다. "그건 공보험으로는 안 되고, 자비로 하셔야 합니다."
안과가 대표적이다. 녹내장 조기 검진, 망막 단층촬영(OCT), 질환 의심이 없는 상태에서의 안압 측정, 망막 정밀 검진 — 이런 주요 예방 검사가 대부분 자비 항목(IGeL)이다. 하나에 20유로에서 140유로까지 내 돈을 내야 한다. 공보험은 "이미 병이 의심될 때"만 커버해준다. 즉 눈이 이미 나빠진 다음에나 봐주고, 미리 막는 검사는 돈을 내라는 것이다.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녹내장을 조기에 잡자는 검사인데도 그렇다. 병을 예방하는 게 치료보다 싸고 안전하다는 건 상식인데, 공보험은 그 반대로 움직인다. 예방은 네 돈으로, 치료는 병이 터진 뒤에.
수술도 마찬가지다. 공보험은 대체로 "표준 방식"까지만 대준다. 백내장 수술을 예로 들면, 초음파로 렌즈를 부수는 전통적 방식과 기본형 인공 렌즈까지는 커버되지만, 더 정밀하다는 레이저 방식이나 난시·노안까지 잡아주는 프리미엄 렌즈를 원하면 눈 하나에 수백 유로에서 900유로가량을 따로 내야 한다. 공보험 쪽 논리는 "더 나은 결과가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최신 기법까지 대줄 수는 없다"는 것이고 나름의 일리도 있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선 단순하다. 매달 그 돈을 다 내고도, 더 나은 선택지 앞에서는 또 지갑을 열어야 한다.
피부과는 한술 더 뜬다. 내가 사는 동네 반경 20km 안에, 공보험으로 제대로 진료를 봐주는 피부과가 사실상 없다. 있어도 대부분 미용 관련이거나, 공보험 신규 환자는 안 받는다. 이건 내 동네만의 불운이 아니다. 통계를 보면 피부과 의사 수입 중 공보험 청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남짓(약 48.6%)까지 떨어졌다. 나머지 절반은 개인 부담 진료와 사보험 환자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이건 의사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공보험 진료로는 병원을 유지하기 빠듯하니 그 바깥에서 수입을 메울 수밖에 없게 만든 제도의 문제다. 그 결과 공보험 환자가 갈 수 있는 피부과 자체가 자꾸 줄어든다.
치과도 다르지 않다. 기본적인 보존 치료 정도만 커버되고, 제대로 된 보철이나 임플란트처럼 정작 목돈이 드는 건 대부분 자비다. 이가 아파서 갔는데, 진짜 필요한 치료는 결국 지갑을 열어야 한다.
아이 치아 교정은 그 정점이다. 독일은 부정교합을 다섯 단계로 나눠, 삶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경우(3단계 이상)만 공보험이 기본 교정을 대준다. 그 아래, 그러니까 이가 눈에 띄게 삐뚤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고 판정되면 미용으로 분류되어 한 푼도 안 나온다. 그러면 부모가 전액을 떠안는데, 고정식 교정에 안 보이는 장치까지 양쪽 턱을 다 하면 그 비용이 웬만한 중고차 한 대 값에 이른다. 설령 공보험이 커버하는 심각한 경우라 해도, 부모가 먼저 20퍼센트를 자비로 내고 치료를 끝까지 마쳐야 돌려받는다. 아이 교정 하나에도, 국가가 "이 정도면 참고 살아라"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이다.
결론 — 매달 떼가면서, 정작 아플 땐 없다

정리해보자. 독일 공보험은 매달 내 월급에서 상당한 돈을 떼어간다. 그런데 이사 한 번 하면 병원을 새로 찾는 것부터가 전쟁이고, 어렵게 찾아도 신규 환자라고 거부당하고, 예약은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고, 겨우 들어간 진료실에서는 다시 "그건 자비"라는 말을 듣는다.
물론 공정하게 말하자면, 딱 하나는 진짜로 인정해야 한다. 정말 큰 병 — 목숨이 왔다 갔다 하거나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는 병 — 앞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 암 치료도, 중환자실도, 대수술도 대부분 커버한다. 미국이라면 집을 팔고 파산했을 병을, 독일에서는 목숨과 재산을 동시에 잃지 않고 넘길 수 있다. 이건 이 나라 공보험이 가진,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진짜 강점이다.
하지만 우리 삶의 대부분은 그런 생사의 갈림길이 아니다. 눈이 침침하고, 피부에 뭐가 나고, 관절이 쑤시고, 이가 시린 그런 일상의 순간에, 이 제도는 자꾸만 뒤로 물러선다. 예약으로 막고, 신규 거부로 막고, 자비 항목으로 막는다. 결국 이 나라 공보험의 태도를 한마디로 줄이면 이렇다. 죽지는 않게 목숨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그 위의 것들 — 예방이든, 더 나은 치료든, 아이 교정이든 — 은 알아서 해라. 그렇다면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매달 그만한 돈을 떼가면서, 이건 과연 그 값을 하는 보험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 갈 생각을 접는다. 죽을 듯이 아픈 게 아니면, 그냥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푹 자고, 며칠 쉬면서 몸이 알아서 낫기를 기다린다. 얼핏 보면 참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자. 이건 자연치유를 원하는 자발적 선택이 아니다. 예약은 몇 달 뒤에나 잡히고, 신규 환자는 받아주지도 않고, 어렵게 가봐야 자비 청구서만 날아오는 시스템 앞에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도달한 체념이다. 병원에 갈 수가 없으니 안 가는 것을, 마치 안 가고도 잘 사는 것처럼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뿐이다. 아파도 참는 게 미덕이 아니라, 아파도 참을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