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지는 독일 (외전) — 코 수술 분투기: 3일차까지
비중격 수술을 받기까지, 그리고 독일 병원에서 보낸 사흘.
나는 코 안쪽 한가운데를 가르는 뼈와 연골, 그러니까 비중격이 휘어 있었다.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 휘었는지는 솔직히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타고난 것인지, 어릴 적 어딘가에 부딪힌 탓인지. 분명한 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상태였다는 것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오랜 시간 고생하며 산다는데, 나는 그동안 심하게 고생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독일에 오면서 체중이 10킬로그램쯤 불었고, 그 무렵부터 코로 숨쉬기가 눈에 띄게 답답해졌다. 원래 휘어 있던 코가, 살이 찌면서 비로소 문제가 될 만한 수준이 된 모양이다. 좁아진 통로로 공기가 겨우 드나드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독일에 처음 와서는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정착하고, 적응하고, 학업을 이어가는 동안 코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학업이 끝나갈 무렵에야 "아, 이거 제대로 된 문제구나" 하고 인지하게 됐다.
그 뒤로도 불편함을 안고 일을 했다. 끊임없는 제품 개발에, 크고 바쁜 전시회가 줄줄이 이어졌고, 그렇게 또 미루고 미뤘다. 그러다 불행이라면 불행이고 시기상으로는 다행인, 회사가 잠시 조용해진 틈이 생겼다. 지금이 아니면 이런 여유를 다시 잡기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모든 처치와 치료 과정을 그야말로 빨리빨리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일에서 수술을 받기까지의 경로

본론에 앞서 독일의 의료 구조부터 짚고 가자.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동네 의원과 병원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네에 개업한 전문의, 이 경우 이비인후과(HNO)는 진단과 외래 진료까지만 맡는다. 입원이나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은 종합병원 같은 큰 기관의 몫이다. 그리고 이 두 세계 사이를 건너가려면 반드시 "의뢰서"라는 종이 한 장을 거쳐야 한다.
전체 경로는 이렇다. 먼저 동네 HNO에서 검사를 받고 상태를 진단받는다. 동네 의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판단되면, 의사가 종합병원으로 보내는 진료의뢰서(Überweisung)를 써 준다. 그걸 들고 종합병원에 가서 환자로 등록하고, 거기서 다시 진단을 받는다. 수술이 확정되면 수술 전 준비 과정(OP-Vorbereitung)을 거치고, 정해진 날짜에 병동에 입원해 비로소 수술대에 오른다.
말로 적으면 네댓 단계로 깔끔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독일스러운 것들이 참 많다.
A4 반 장짜리 배달부

첫 관문인 동네 HNO부터 그 "사이사이"가 시작된다. 의사는 종합병원으로 가라며 진료의뢰서(Überweisung)를 써 줬다. 나는 그걸 들고 종합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자 이번엔 입원 의뢰서(Einweisung)가 따로 필요하다고 했다. 그 종이 한 장을 받겠다고 동네 HNO로 또 가야 했다.
독일이 뭐 그냥 가서 달라면 주는 나라인가. 하나하나가 다 예약(Termin)이다. 동네 의원에 간다(테르민). 받은 서류를 들고 종합병원에 간다(테르민). "입원 의뢰서 끊어주세요"(테르민). 그걸 받아서 다시 가져간다(테르민). 종이 한 장이 손에서 손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사이에는 어김없이 예약과 기다림이 끼어 있다.
여기에 더해, 종합병원에 가기 전에 CT 영상과 알레르기 테스트 결과를 전부 챙겨 오라고 했다. 문제는 동네 HNO에는 CT 장비가 없다는 것. CT를 찍으려면 영상의학과(Radiologie)에 또 따로 예약을 잡아 찾아가야 한다. 결국 동네 HNO, 영상의학과, 종합병원 — 세 군데를 뺑뺑이 돌아야 했다.
더 기막힌 건 이 모든 결과가 병원끼리 전산으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은 영상의학과에서 찍은 CT를 인터넷으로 열어볼 수 있다. 그래서 그 링크를 이메일로 분명히 보냈는데, 돌아온 대답은 "못 받았다"였다. 결국 그 디지털 영상을 굳이 종이에 프린트해 손에 들고 찾아갔고, 그제야 접수가 됐다.
각종 소견서와 테스트 결과도 마찬가지다. 전부 출력물로 받아 다음 병원에 전달해야 한다. 전산화만 되어 있으면 클릭 몇 번으로 끝날 일인데, 여기서는 환자가 서류 운반까지 맡는다. 하나를 떼러 갔다가 다른 곳에 제출하고, 빠진 게 있으면 다시 돌아간다.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건지 병원 사이를 오가는 배달부가 된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8시에 오라는 말의 진짜 뜻

이렇게 서류를 다 그러모아 드디어 종합병원에 입성했다. 여기서부터는 독일 공보험 시스템을 겪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세계가 펼쳐진다.
진단을 받으러 간 날, 종합병원은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오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그 시간에 맞춰 갔다. 그런데 첫 번째 의사와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건 11시였다. 그걸로 끝도 아니다. 입원 상담을 하는 사람과 마주 앉은 건 오후 1시였다.
수술 전 준비일(OP-Vorbereitung)도 똑같았다. 8시에서 9시 사이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마취과 상담은 11시, 각종 검사는 오후 1시였다. 그날 하루 대기실에 앉아 있는 것 말고는 한 게 없다. 옆자리 사람들도 다들 영혼을 반쯤 빼놓은 얼굴로, 자기 순서가 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압권은 수술 일정이었다. 수술 날짜는 내가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바뀌었고, 마지막 날에는 하루에만 무려 세 번이 바뀌었다. 아침에 들은 날짜와 저녁에 확정된 날짜가 다른 식이다.
대체 이게 무슨 시스템인가. 8시에서 9시 사이라는 예약 시간이 뜻하는 바는 결국 이거다. "그날 안에는 당신 차례가 온다. 다만 그게 언제 끝날지는, 글쎄다." 아침에 병원에 발을 들이면, 그날 하루는 통째로 반납할 각오를 해야 한다.
수술 당일, 기다림의 연속

수술 당일도 다르지 않았다. 전날 저녁부터 금식이라 배는 이미 쫄쫄 굶은 상태였다. 아침 9시 35분까지 입원해 수속을 마쳤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병실에는 가족이 딱히 머물 공간도 없어서 핸드폰이며 지갑이며 내 모든 짐은 아내가 챙겨 휴게실로 가져갔다. 아내는 거기서 기다리다가 수술이 끝난 뒤에야 나를 보러 오기로 했다.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야말로 몸뚱이 하나만 남은 채 병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리고 기다렸다. 배는 고프고, 시간 때울 핸드폰 하나 없이, 멀뚱히. 몇 시간이 지나서야 오후 1시쯤 "이제 수술 준비하러 가자"는 말이 떨어졌다. 끝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수술 준비 대기실로 옮겨져 또 30분을 기다렸다. 마취방까지 들어가서는, 앞 수술이 아직 안 끝났다며 거기서 또 한 시간을 기다렸다.
입원부터 수술대에 눕기까지, 하루가 온통 기다림이었다. 금식으로 비운 속을 부여잡고 손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수술이 대체 언제 진행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 자체는 무사히 끝났다. 회복실에서 한 시간쯤 상태를 지켜본 뒤 병실로 옮겨졌는데, 여기서도 서류와 현실은 따로 놀았다. 내 손목밴드에는 분명히 2인실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정작 들어간 곳은 3인실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저녁 식사. 전날 저녁부터 꼬박 하루를 굶고 수술까지 마친 환자에게 나온 저녁은, 치즈 두 조각과 소 여물처럼 거칠고 딱딱한 통곡물 빵 두 개가 전부였다. 그나마 수술 직후라 식욕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었지, 멀쩡한 정신에 배까지 고팠다면 이 상차림 앞에서 꽤 서러웠을 것이다. 맛을 기대하기엔 민망하고, 끼니라 부르기도 애매한 수준. 솔직히 독일 교도소 밥도 이것보다는 잘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마친 사람이 이걸 먹고 과연 기운을 차리고 생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독일 병원밥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하루를 굶은 끝에 마주하니 허탈함이 남달랐다.
아낄 수 있는 건 어디서든 아끼면서, 뽑아낼 수 있는 곳에서는 야무지게 뽑아낸다. 병원 주차장은 시간당 2유로였다. 환자와 보호자가 드나들 수밖에 없는 곳에서 이 요금이면 말도 안 되게 비싼 것이다. 나중에 구글 리뷰를 보니, 이 병원은 모든 게 원가절감이고 주차장 장사가 사실상 캐시카우라는 평까지 있었다. 저녁 상차림이 왜 그 모양이었는지, 주차 요금을 보고 나니 묘하게 납득이 갔다.
병실에서 보낸 사흘

나와 같은 병실에는 할아버지 두 분이 계셨는데, 저녁 7시면 벌써 잠자리에 드셨다. 방해가 될까 싶어, 나는 밤마다 병실을 나와 복도에서 컴퓨터를 하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적당히 졸릴 때쯤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행히 수술 방식은 덕을 봤다. 요즘은 예전처럼 코 안을 거즈로 꽉 틀어막는 패킹 대신, 얇은 실리콘 판을 비중격 양쪽에 대어 고정하는 방식도 쓰인다. 비중격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꼽는 악몽이 수술 후의 완전한 코막힘이다. 코가 꽉 막혀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 그 답답함 말이다. 패킹을 하지 않으니 그게 한결 덜했다. 코막힘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코로 숨을 쉴 수 있는 정도로 첫날을 넘겼다.
그렇게 운 좋게 넘어가나 싶었다. 그런데 둘째 날 아침, 레지던트인지 인턴인지 모를 사람이 와서는 잘 아물어 가던 내 코를 사정없이 쑤셔놓았다. 그 순간부터 피가 질질 흐르고 코가 꽉 막혔다. 패킹을 하지 않아 겨우 피했던 그 악몽, 비중격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를 떤다는 그 고통을 결국 고스란히 겪게 된 것이다. 숨은 못 쉬고 피는 계속 나고, 그날 하루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 사람이 코를 들쑤셔놓지만 않았어도, 나는 수술 후 고생 없이 넘어가는 몇 안 되는 럭키 케이스가 될 뻔했다. 하지만 독일이 그럴 리가 없지. 이 나라에서 무언가가 쉽고 순조롭게 끝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래도 셋째 날, 드디어 집에 가는 날 아침에는 상황이 나아졌다. 또 다른 의사가 와서 이번엔 석션으로 코 안을 미친 듯이 빨아냈는데, 그러고 나니 막혔던 코가 다시 뚫리고 먹먹하던 귀도 멀쩡해졌다. 둘째 날에 비하면 살 것 같았다. 사람 손 하나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 셈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독일은 독일다웠다. 집에 가는 날 아침밥도 그 저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코 아래에 대어 흐르는 피와 분비물을 받아낼 솜도 필요했는데, 이게 또 문제였다. 종합병원 안에도 파는 곳이 없고, 약국에서조차 팔지 않는다. 수술을 막 마치고 나온 환자가 당장 써야 할 물건을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하라는 건지, 끝까지 알 수가 없는 나라다.
서류 한 장부터 수술 후 회복까지,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게 바로 내가 겪은 독일이다. 그래도 어쨌든, 이 징글징글한 병원에서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