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터지는 독일 (외전 2) — 코 수술 분투기, 그 후 일주일
퇴원 뒤에도 이어진 막힘과 코 청소, 그리고 일곱째 날 다시 쉬어 본 숨.
퇴원하는 날 링거 바늘을 빼는 건, 일종의 퇴소식 같은 의미였다. 수술 이후 단 한 번도 쓴 적 없는 링거 바늘. 물론 만일의 응급 상황에 대비해 꽂아두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세상 불편한 것들 중 손에 꼽을 만한 물건이었다. 그걸 드디어 손에서 뽑아냈다.
퇴원은 A4 한 장으로 끝났다

그다음은 일사천리다. 병원에서 무슨 수술을 했고 어떤 처치를 했는지 정리한, 내 담당 Praxis 의사에게 전달할 A4 용지 한 장을 뽑아 손에 쥐여주고는 "Gute Besserung(쾌유를 빕니다)" 한마디. 그걸로 끝이다. 살가운 인사와 의사선생님과의 만남 이런건 존재하지 않는다. A4용지 상태를 보니 뭔가 이상하다. 글씨 뿐만 아니라 온 종이가 노청빨검 패턴으로 칠해져 있었다. 프린터 토너가 말썽인지, 보통 이런 경우라면 다시 뽑아주는 게 상식일 텐데, 돌아온 반응은 이랬다. "아, 토너가 없네. 뭐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읽을 수는 있겠지? 오케이?" 그리고 끝. 담당 의사에게 넘겨야 할 공식 서류가 이런 꼴이라니, 나는 내가 한 잘못도 아니지만 이런 퀄의 종이를 전달하기 미안해 스캔한다음 AI로 저 패턴들을 다 제거하고 다시 담당의사에게 보내주었다.
그렇게 주사바늘을 빼고 A4 용지를 받고 난 이후에는, 언제 나가든, 어떻게 나가든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들어올 때는 하루 종일 그렇게 기다리게 하더니, 나갈 때는 닭장 문을 열어두고 드넓은 초원으로 나가라는 닭들처럼, 그냥 초방치 시스템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퇴원하기 전 병원비 정산을 먼저 마쳐야 하지만, 독일에서는 이번 수술이 공보험에서 비용을 전부 커버하는 건이라 수술비나 입원비로 내가 따로 낼 돈은 없었다. 비중격 교정이나 하비갑개 축소처럼 숨쉬기와 관련된 기능적 문제를 고치는 수술은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보험의 표준 급여 범위 안에 들어간다. 평소에는 영 별로인 공보험이지만, 이럴 때만큼은 제 몫을 한다.
일상 진료에서는 그렇게 속을 썩이면서도, 정작 큰 병이나 큰 수술 앞에서는 집 팔고 재산 팔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독일 공보험이 나중에 가서야 좋은 줄 안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번에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쓰레빠에 추리닝, 삼일 동안 감지 못해 떡진 머리, 코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몰골로 주차장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병원 앞 도로에서 아내를 만나 드디어 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도 숨은 막혀 있었다

사실 이 무렵 코 상태는 최악에 가까웠다. 코로는 숨을 거의 쉴 수가 없었고, 잠깐 뚫렸다 싶으면 한두 시간 뒤에 다시 딱지와 분비물로 꽉 막혔다. 그러니 숨을 쉬는 것도,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전부 입으로 해야 했다. 그 결과 입안은 사하라 사막처럼 바싹 말라 갔다.
조금이라도 이 타들어 가는 입안을 달래 보려고, 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입안에 바르는 수분젤을 찾았다. 동네 약국 아주머니는 이 제품이 좋다면서 캐모마일이 들어간 리도카인 젤을 권했다. 지금 생각하면, 숨 쉴 구멍이 입 하나뿐이라 뇌에 산소가 덜 가서 그랬는지, 아니면 퇴원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설마 이상한 걸 주겠어 하는 의심도 없이 주는데로 덥석 받아온 내가 바보였다.
리도카인은 마취제다. 입안 전체를 마취시키면 건조함이나 따가움은 당장 못 느끼겠지만, 그걸 건조함을 완화한다고 사용하기는 조금 과하다. 오히려 감각이 없는 상태로 뭘 씹다가 혀나 볼 안쪽을 잘못 씹어 작살이라도 내면 그땐 정말 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건조함을 해결하는 대신,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는 쪽을 택했다. 지금도 지옥인데, 조금 더 편해 보겠다고 잠자고 있는 마그마까지 들춰 헤집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어차피 코 상태로만 보면 집이나 병원이나 매한가지다. 병원에 있다고 아침에 있는 3~5분 석션 회진 이외에는 딱히 더 해주는 처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달라질 것도 없다. 대신 집에는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내가 들락거릴 때마다 잠을 설칠 할아버지들이 양옆에 없으니, 밤에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했다. 코가 막혀 있으니 제대로 잠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몸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어야 겨우 잠이 들었고, 그렇게 잠들어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어디서 듣기로는, 밤에 이렇게 자꾸 깨면 몸이 계속 깨어 있는 상태로 활성화되어서 화장실을 더 자주 찾게 된다고 한다. 거기에 입과 목이 너무 말라서 물이라도 계속 마시지 않으면 답이 없었다. 평소에는 죽어도 못 하던 하루 1.5리터 이상 물 마시기를, 이때는 가뿐하게 해냈다. 역시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하루 서너 시간 겨우 자고, 그마저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는 날들이 반복됐다. 다행히 동네 HNO 의사가 병가를 넉넉하게 써 준 덕분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이지, 집에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답이 없는, 병가 중의 병가를 경험했다.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이 와중에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수술 후 넷째, 다섯째, 여섯째 날, 동네의 친절한 HNO 의사는 내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매번 따로 시간을 내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예약 하나 잡는 데 두 달은 걸리는 시스템인데, 나에게는 예외적으로 계속 진료를 봐준 것이다. 독일 의료 시스템에 그렇게 이를 갈던 나도, 이런 사람 앞에서는 할 말이 없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병원에 갈 때마다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께 한국인의 정을 담아 초코파이 한 상자씩 챙겨 갔다. 그중 한 분은 초코파이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평소에는 듣기 힘들던 "Danke"를 몇 번이나 연달아 했다.
매일 받은 코 청소

수술 후 코 안을 청소하는 것도 엄연한 치료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번 약속 시간에 맞춰 가서 석션과 딱지 제거, 세척을 받았다. 의사는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시술 전에 매번 국소 마취까지 해 줬다. 그런데도 매번 코 안이 뜯겨 나가는 듯한 고통에 눈물이 났고, 광대뼈 언저리까지 얼얼했다.
한 번 병원에 다녀오면 그 얼얼한 통증이 밤까지 이어졌다. 그럴 때면 얼음을 대고, 차가운 병을 머리에 얹고, 그래도 너무 심하면 진통제를 먹어 가며 버텼다. 그렇게 여섯째 날까지의 청소를 모두 마쳤다.
여섯째 날, 마지막 처치를 마치며 의사가 말했다. "내일 코 안에 있는 실리콘을 빼고 나면 훨씬 좋아질 거예요." 그렇다. 일곱째 날, 나는 수술을 받았던 그 큰 병원으로 다시 가서 코 안에 박혀 있는 실리콘 판을 빼내야 했다. 좋아질 거라는 말은 반가웠지만, 그 과정이 어떨지 생각하니 겁부터 났다. 그렇게 두려움을 안고, 일곱째 날 다시 큰 병원으로 향했다.
마지막 과정 실리콘 제거

독일의 최첨단 예약 시스템으로 인하여 정해저 있는 예약 시간과 상관없이 이번에도 많이 기다리게 될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했다. 그래서 예약은 10시 45분이었지만, 최대한 서둘러 10시 30분에 도착했다. 그러든 말든, 역시나 당연하게도, 내가 겨우 처치실에 들어간 건 오후 1시 반쯤이었다.
의사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의료용 가위를 꺼내 코 안의 실밥을 자르려 했다. 그런데 그 가위가 문제였다. 아마 소독만 해서 계속 돌려쓰고 날은 한 번도 갈지 않은 건지, 실이 잘리기는커녕 거의 뜯어낼 기세로 끌려 나왔다. 나는 나대로 괴롭고, 의사도 이건 답이 없다 싶었는지 결국 포기했다.
그러더니 옆 진료실에서 낫처럼 생긴 미니어처 칼날 하나를 들고 와서는, 이걸로 다시 해보겠다고 했다. 날이 시퍼렇게 선 낫 모양의 칼날, 덜덜 떨리는 것 같은 의사의 손, 그리고 독일 사람들의 거대한 손가락. 이 셋의 콜라보레이션을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웁스" 하고 손을 놓치거나 집중력을 잃는 순간 칼날이 내 코를 뚫고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지난 며칠을 통틀어 이때가 제일 식겁했다. 다행히 실은 낫같이 생긴 칼날로 무사히 제거됐고, 몇 번의 불편한 순간을 더 견딘 끝에 코 안에 박혀 있던 실리콘 지지대를 양쪽에서 모두 빼냈다.
처음 다시 쉬어 본 숨

양쪽 지지대를 빼고 마지막으로 석션을 한 뒤, 숨을 들이쉬었다. 할렐루야. 오른쪽 코가 제 기능을 하며 공기를 빨아들인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몇 시간 못 가서 다시 막히긴 했다. 그래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생활 가능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이때 비로소, 내가 이 수술을 왜 했는지 그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지대를 빼기 전까지 나는 이 후기의 결론을 이렇게 내려두고 있었다. "숨 못 쉬는 지옥 같은 고통의 연속이다. 이 수술은 하지 마라." 그런데 처치 하나에, 지난 며칠 동안 쌓아 온 그 부정적인 생각의 뺨에 싸대기를 날릴 만큼 충격적인 심적 반전의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 수술과 후기의 결론은 이렇다. 지금은 괜찮지만, 1년쯤 지나 혹시 재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수술이 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가, 판단의 저울이 겪는 고통 대비 삶의 질 향상 쪽으로 제대로 기울어 있는가를 묻는다면, 내 대답은 YES다. INTP가 내린 결론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내린 한마디이니, 믿어도 좋거라 생각한다.
서류 배달부 노릇에, 하루를 통째로 반납하는 대기에, 뜯겨 나가는 듯한 청소까지. 이 나라에서 코 하나 고치는 길은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주일 만에 다시 코로 숨을 쉬어 보니, 그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물론 모든 수술이 뜻대로 잘 풀리는 건 아니다. 결과가 기대만 못할 수도 있고, 나와 합이 잘 맞지 않는 의사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 숨 쉬는 일이 버겁다면 이 수술은 인생에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것이 이번 후기의 결론이다.